고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현재 우리나라 최고의 정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하지만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바난을 받는다 그 이유를 적는다.
[비난점]
1.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 광개토대왕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 없다.
오직 장수왕의 기록만 있다.
이는 우리민족이 중국을 공격해선 안된다는 사대사상의 반영이다.
(참고로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작성후 중국에 바쳤다)
2. 고구려, 백제의 역사를 의도적으로 축소시켰다.
- 광개토비에는 광개토왕 이전 가계순서와 삼국사기의 순서가 다르다.
고구려 왕가의 순위를 주몽이후 가계에서 몇명을 잘라낸 의혹이 나온다.
고구려 역사를 적은 광개토비의 순서가 틀릴리없다.
이는 김부식이 고구려 역사를 일부러 축소시킨 의혹이 짇다.
- 백제역사는 고의로 누락 시켰다.
김부식 당시 백제역사서는 많았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백제관련 인용하는 역사서가 있었고, 당나라의 구당서, 송서 등에도 인용하는 역사서가 있었다.
그러나 이를 철저히 무시하거나 외면했다.
이로인해 우리는 백제의 역사를 알 방법이 단편의 조각이외엔 없다.
3. 자신의 정치적이익을 위해 우리역사를 왜곡했다.
- 그는 우리민적의 기원을 <삼국-통일신라-고려>로 봤다.
우리역사는 <고조선-부여-삼국-남북국-고려>를 외면했다.
이는 신라 왕족출신이었던 김부식이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사상을 신라를 계승한 것으로 바꿔 신라계인 자신집안의 안위를 도모한 의혹이 짇다.
- 고구려의 주몽은 분명 부여에서 자라난 부여왕의 서자 출신임이 광개토왕비나 삼국사기에서도 나와있다. 따라서 고구려의 기원은 부여임이 분명하다.
- 백제의 기원은 온조왕과 비류왕의 아버지가 고구려 주몽으로 되어 있고, 어머니가 졸본부여의 사람이며 주몽의 부인으로 되어있다.
- 위의 사실로 봐서 부여는 반드시 삼국의 역사에 포함되었어야 했다.
- 고조선, 부여(북부여, 동부여, 남부여, 졸본부여), 삼한(마한, 진한, 변한), 진국, 가야, 예, 맥 등의 역사를 외면했다.
- 참고로 중국문헌엔 마한왕이 중국과 고조선에서 탈출한 사람에게 진한지역을 주어 살게 했다는 기록이 나와있다.
- 발해를 우리역사로 포함치 않았다.
당은 고구려를 멸망시킨뒤 고구려땅을 십여년후 발해에 고스란히 내주었고 발해는 고려국왕이라 칭했다는걸로 봐서 분명 삼국역사에 포함되었어야 한다.
또 발해는 당과 매우 치열한 전쟁까지 치렀다.
이와같이 발해는 고구려 유민의 국가임이 분명한데 포함치않았다.
이로인해 중국은 자신들의 변방국가로 주장하는 근거를 만들었다.
- 고구려가 차지한 낙랑, 대방을 신라가 차지했다고 역사를 바꿔버렸다.
4. 철저한 사대적, 유교적 사상의 기록이다.
- 우리민족의 중국과의 처절한 투쟁은 상당부분 왜곡했다.
찬란한 고구려의 중국와의 투쟁, 백제의 중국진출등은 사대사상에 맞지 않아 누락한 흔적이 있다.
- 그는 삼국이 중국의 연호가 아닌 각국의 연호를 쓴데 비난까지 하였다.
5. 지역을 의도적으로 바꿔 기록했다.
- 중국문헌엔 고조선과의 경계를 만리장성을 근거로 패수라 한 기록이 있다.
허나 후에 당이 신라와의 국경을 대동강으로 짓고 그를 패수로 불렀다.
따라서 고조선은 지금의 대동강의 평양이 아닌 요동으로 만주나 요동에 있었다.
후에 부른 역사지명을 패수라부르며 당시 중국의 입맛에 맞게 의도적으로 우리역사를 축소했다. (참고로 중국이 패수라 부른지역은 대동강뿐 아니라 대하, 대능하, 요하, 예성강등이 있었다.
[존재의의]
1. 현존 최고의 역사서.
2. 왜곡이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실재적인 내용을 기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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